
조선시대, 일본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왔다. 어마어마한 덩치의 동물을 처음 본 조선사람들...신기한 이 동물을 구경하다가 흥분한 코끼리에 밟혀서 사람 하나가 죽어버렸다. 조정에서는 사람을 죽인 저 동물을 귀양을 보내고...귀양 간 동네 전라도 감사는 산 목숨 죽일 수는 없어서 잘 먹는 풀을 구해다, 구해다, 구해다 먹이는데 한도끝도 없이 먹어대는 이 동물...전라감사는 상소를 올린다. 저것이 을매나 잘먹어대는지 먹어도 먹어도 끝도 없어서 전라도 재정 파탄나것는디, 왜 하필 우리만 저걸 멕여야 한디요? 그래서 충청도 감영이 있는 공주로 보냈다나 뭐라나...낙산 너머 호젓한 비구니절집 보문사, 미타사 그 호젓한 절집 나드리 갔다가 잠깐 조선의 코끼리 얘기로 새나가버렸다...
Feb 18, 2015
1 hr

창신동과 안암동 사이 성북천이 흐르는 개울가 동네 이름이 보문동이다.
바로 낙산 너머 산에 기대어 자리잡은 비구니 절집 보문사에서 유래한 동네이름인데,
예전에는 이 일대를 보문동보다는 탑골이라고 불렀다.
그도 또한, 보문사 바로 옆에 자리잡은 또 다른 비구니 승방 미타사 뒤 5층석탑 때문에 유래한 지명이다.
보문동에 자리한 보문사 그리고 미타사를 들러보자.
마치 누군가 숨겨 놓은 것처럼 오랜 역사와 다양한 볼거리를 간직한 이 절집들이 왜 여기껏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Feb 17, 2015
1 hr 1 min

세계 아웃도어 시장 가운데 우리나라가 2위 규모라고 한다.
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수에 비해 엄청난 산 사랑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서도 장비 과잉, 브랜드 선호, 고가 선호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동네 뒷동산에만 가는 데도 히말라야 원정대처럼 장비의 수준은 과잉 그 자체다.
고가, 저가를 떠나서 모자부터 신발까지 같은 브랜드로 온통 알록달록 깔맞춤하는 촌티컨셉은 목적이 산이 아니라 패션에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게 한다. 비싸게 주고 살거면 제대로 사고, 싸게 사더라도 좋은 걸 사는 방법은 없을까?
Feb 13, 2015
58 min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 가회동 일대를 북촌이라 하고 지금의 정동 일대를 서촌이라 했다.
양반이라고 하는 것이 이 두 군데 사는 관료들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거기 끼지 못했던 하급관리는 종로나 청계천, 을지로의 4, 5, 6, 7가 쪽으로 밀려났고,
무지랭이 백성들은 그조차 끼지 못하고 동대문밖으로 밀려나 살았다.
낙산 주변의 사찰들은 그런 백성들과 함께 호흡해온 소박한 절들이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도 왕비에서 물러나 창신동 청룡사에서 평생 옷감에 물들이며 살았다고 한다. 그곳들로 찾아가본다....
Feb 11, 2015
59 min

안산 자락에 안기듯 자리한 봉원사는 별명이 새절이다. 영조 임금은 사랑했던 여인 영빈 이씨가 죽자 지금의 연세대학교 자리에 있던 절을 봉원사 자리로 옮기게 하고 연세대 터에 묘를 만든다.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에 낳은 아들이 바로 사도세자다. 본래 절터를 묘로 내주고 옮겨서 새로 지었다 해서 새절로 불렸다. 삼봉 정도전은 조선 초 불교를 박해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 그의 글씨가 봉원사에 현판으로 붙어 있다. 한쪽 귀퉁이에 정도전이라는 이름도 새겨져 있다. 봉원사 명부전 현판이다. 본래 정동에 있던 흥천사 명부전 현판이었던 것이 어떻게 봉원사까지 흘러 들어오게 됐는지... 추사는 대원군에게 난초 치는 것과 글씨를 가르쳤다. 대원군의 아현동 별장이 봉원사 대방이 되어 옮겨졌는데, 그 대방 마루 위에 추사와 그의 스승 옹방강의 글씨 3점도 그대로 걸린 채 옮겨져 지금까지 나란히 걸려 있다. 구경가볼 일이다.
Feb 5, 2015
1 hr 1 min

남산 꼭대기 지금의 팔각정터에 있었던 국사당은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뿌리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지금의 남산식물원 터에 일본식의 신궁을 세웁니다. 이른바 '조선신궁'이죠. 조선을 일본화하는 데 있어 이 조선신궁은 일본의 정신을 식재하는 상징과 같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신궁보다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자리잡고 있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을 겁니다. 당장 국사당이 헐리게 되고 조선의 무속인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해서 다시 세운 것이 지금 인왕산 국사당입니다. 남산 국사당보다 규모도 소박해지고 볼품도 없어졌지만 아예 사라질 뻔한 조선의 정신이 그곳에라도 남아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일지...인왕산 국사당 주변에는 또 작고 볼품없는 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각기 이름이 있지만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그냥 인왕사로 불립니다. 불교와 민속종교가 어우러진 그 공간이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도량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왕산 북쪽 홍제천 옆에 옥천암에는 고려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얼굴 하얀 관세음보살님이 인왕산과 홍제천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주말에 가서 한번 말이라도 걸어봄직한 친숙한 표정입니다.
Feb 2, 2015
59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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